1. 소개
<전념>은 현대 사회에서 장기적 목표와 가치에 헌신하는 것의 중요성을 탐구한다. 데이비스는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단기적 성과와 즉각적인 만족에 치중하는 경향을 비판하며, 진정한 성취와 행복은 깊이 있는 관계, 커뮤니티 참여, 지속적인 노력에서 나온다고 주장한다. 그는 다양한 사례를 통해 개인과 사회가 '전념'을 통해 더 나은 미래를 만들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 책은 단순한 자기계발서를 넘어, 삶의 방향성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깊은 통찰을 제공한다.
2. 메모
1장 | 문화의 두 가지 유형
✔️ 탐색 모드에만 머물게 하는 세 가지 두려움
(1) 후회regret에 대한 두려움
어느 하나에 전념했다가 훗날 ‘다른 것을 할걸..’ 하고 후회할까 걱정함.
(2) 유대assocation에 대한 두려움
무언가와 관계를 형성하고 헌신하면 그로 인해 내 정체성, 평판, 통제감에 혼란이 생길까 두려워함.
(3) 고립missing out에 대한 두려움
무언가에 헌신하면 그로 인한 책임감 때문에 그 외에는 아무것도 될 수 없고, 아무 데도 가지 못하며, 아무도 만날 수 없을 것으로 생각함.
✔️ 전념하기로 얻을 수 있는 보상
전념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존재와 삶을 불안해하지 않는다.
전념하는 사람들은 부분적 확신을 바탕으로 오랫동안 무언가를 시도, 구현하여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를 본다.
📎 마음속 가장 깊고 내밀한 곳을 들여다보면 우리는 관계에서도 이러한 긴장감을 느끼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겉으로는 넓은 세계로 나가서 엄청난 모험을 하길 원하는 것처럼 보여도,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좋아하는 친구들과 익숙한 동네에서 그냥 편안하고 소소하게 살기를 꿈꾸는 사람도 많다. (..) 그 긴장감은 타당하다. 사람들은 무언가를 거의 잃어버릴 순간이 되면 그때야 그것을 그리워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얼마 남지 않은 것들을 소중하게 끌어안는다.
📎 전념하기로 얻을 수 있는 보상이 있다. 내가 관찰한 바에 의하면 전념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존재와 삶을 불안해하지 않는다. 오늘날 우리는 무언가를 확신하는 데에 어려움을 느낀다. 무엇을 믿을지, 누구를 신뢰할지는 물론, 바로 다음 해에 내 옆에 어떤 것들이 남아 있을지조차 알 수 없다. (..) 이러한 불확실성은 우리가 무언가에 전념하지 못하도록 막는다. 아무것도 확실하지 않으므로 그냥 복도에 남아 있는 편이 더 안전하다고 느낀다. 잘못된 방을 고를 바에는 차라리 어떤 방도 선택하지 않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전념하기는 허무주의와 근본주의 그 중간에 있다. 부분적인 확신을 바탕으로 오랫동안 무언가를 시도하고, 구현하고, 무슨일이 벌어지는지 지켜본다. 지나치게 외부에서만 확신을 찾으려는 근본주의와는 달리, 전념하기는 우리 안에서 믿음이 유기적으로 자라도록 한다. 더 깊이 전념할수록 무엇이 아름답고, 좋고, 진실인지 서서히, 그러나 더 명확하게 이해하게 된다.
📎 전념하기의 핵심은 시간을 통제하는 것에 있다. 죽음은 삶의 길이를 통제한다. 그러나 삶의 깊이를 통제하는 것은 나 자신이다. 전념하기는 우리에게 주어진 한정적인 시간을 인정하는 대신, 제한 없는 깊이를 추구하겠다는 결정이다.
2장 | 무한 탐색 모드의 장점
✍🏻 탐색 모드에도 인정할 점이 있음. 탐색 모드의 장점은 특히 10대 후반과 20대 초반에 해당하는 사람들에게 유효. 이 시기에는 이곳저곳을 탐색하는 것이 꽤 즐겁고 좋음. 최초의 이것, 최초의 저것, 그냥 모든 것에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음. 무한 탐색 모드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잔뜩 만들어낼 수 있으며 탐색은 재밌다. 큰 위험 없이 성장할 수 있는 자유를 제공하고, 무엇보다도 새로운 경험을 아주 아주 많이 할 수 있음.
✔️ 융통성
📎 융통성, 즉 어떤 것을 좋아하는 마음이 식을 때 자유롭게 빠져나갈 수 있는 능력은 탐색의 가장 분명한 장점이다. 모든 의사결정의 영향력이 조금씩 줄어들기 때문에 언제든지 마음을 바꿔서 다시 탐색을 시작할 수 있다.
📎 융통성이 없으면 탐험도 없다. 그리고 탐험이 없으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발견할 기회도 얻지 못한다.
✔️ 진짜 자아 찾기
📎 융통성으로 인한 탐험의 기회가 가져다주는 가장 중요한 결실은 탐색 모드의 두 번째 장점으로 이어진다. 탐색은 진짜 자신을 반영하지 않은 채, 단지 내가 어떤 위치에서 태어났는지 만으로 정해지는 ‘물려받은 전념’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 새로움
📎 탐색의 가장 단순한 장점은 새로움이다. 새로운 것을 시도할 때마다 우리는 짜릿한 흥분과 설렘을 경험한다.
📎 삶에서 가능한 많은 새로움을 즐기겠다는 생각은 욜로(You Only Live Once)라는 신조어까지 가져왔다. 거기에 뒤따라서 발음이 비슷한 포모(Fear Of Missing Out)도 등장했는데, 이는 한 번뿐인 인생에서 남들만큼 충분히 경험하지 못할까 봐 두려워하는 공포감을 가르킨다.
3장 | 무한 탐색 모드의 단점
📎 그러나 언젠가는 이 모든 달콤함이 쓴맛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 결정 마비 decision paralysis
📎 선택지가 많을수록 여기저기 탐색만 하고, 자신의 결정을 후회하며, 전념할 자신이 없어진다.
📎 우리는 왜 선택의 자유가 커질수록 만족하지 못하는 것일까?
- 단순한 쇼핑 피로 - ‘밀가루 빵을 먹을까, 호밀빵을 먹을까?’를 두고 고민하는 순간이 수천 번 모여 일상적인 에너지, 의지, 작업기억을 소비함. 이를 두고 경제학자 프레드 허시는 ‘사소한 의사 결정의 횡포’ (충분히 괜찮은 선택지로도 만족할 수 있으면 크게 문제 되지 않지만 현대인들은 ’모든 결정과 구매가 할 수 있는 한 가장 좋은 선택임이 확실하지 않으면‘ 만족하지 못하도록 훈련받았음) 라고 표현.
- 자신이 포기한 선택지에 대한 괴로움 - 아이스크림 가게에 가서 바로 초콜릿 맛을 주문하면 달콤한 즐거움을 온전히 즐길 수 있다. 그러나 초콜릿, 바닐라, 딸기 맛 중에 고민하다가 초콜릿 맛을 고르면 다른 걸 먹을 걸 그랬나 하는 생각 때문에 즐거운 마음이 덜해진다. 더 많은 선택지를 탐험할수록 선택하지 않은 대안이 더 많이 쌓인다.
- 허구적인 대안에 대한 아쉬움 - 예를 들어 시카고로 이사하겠다는 의사결정을 내렸을 때, 마이애미, 워싱턴 등 실재하는 다른 도시들에만 아쉬움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마이애미의 해변과 워싱턴의 박물관 등을 모두 갖춘 상상 속의 도시에도 괴로움을 느낀다.
- 과도한 선택의 자유가 낳은 지나치게 많은 책임감 - 만약 삶의 모든 면을 직접 설계할 수 있다면 그에 대한 책임도 전적으로 져야 함. 사람들이 동전 던지기로 의사결정을 하는 이유도 자신이 아닌 동전 탓을 하기 위함.
✔️ 아노미 anomie
📎 무한 탐색 모드는 고립을 낳을 수도 있다. 누구와도 무엇과도 연결되지 않으며, 아무도 내게 무언가를 기대하지 않는다. 내가 나이지 못하게 하는 관계, 역할, 공동체에서 벗어나는 것은 안도감을 준다. 그러나 그 이후에는 새롭게 속할 수 있는 다른 공동체를 갈망하는 상태에 놓인다. 나와 맞지 않는 방에 갇혀있는 것도 우울하지만, 계속 복도에만 머무는 것도 그에 못지않다.
📎 뒤르켐은 문화의 유형에 따라 사람들이 자살하는 이유도 다르게 나타난다는 사실을 발견함.
- 첫 번째 유형 : 개인의 특성이 그가 속한 문화의 기준에 지나치게 구속될 때. 문화가 나를 지나치게 통제하고 가둔다고 느껴서 죽는 사람들. 절망한 수감자, 억압적인 가정이나 공동체에 순응하지 않는 사람들.
- 두 번째 유형 : 반대로 공동체와 기대치가 나를 얽매지 않아서 죽는 사람들. 어딘가에 내가 속한 공동체가 있음을 알면서도 거기에 속하지 못해 절망. 무엇을 꿈꿔야 하는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 등에 관한 지침을 얻지 못해 괴로워함. 무의미, 무관심, 허무주의에서 오는 절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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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mos’는 그리스어로 ’법‘을 뜻함. ’아노미‘는 삶을 조직할 수 있는 기준이나 법이 없다고 느끼는 것.
- 외부의 도움이 없으면 삶에서 의미를 찾기가 쉽지 않다.
- → 이러한 유형의 자살을 ‘아노미적 자살 Anomic suicide’라고 부름. 그 뒤에 깔린 감정은 아노미amonie
📎 아노미는 경기에서 패배했을 때 느끼는 절망이 아니라, 득점판이 없을 때 느끼는 절망이다. 여행 중에 길을 잃었을 때 느끼는 절망이 아니라, 가치 있는 목적지가 없을 때 느끼는 절망이다.
📎 아노미의 해독제는 진짜 공동체다. 우리는 삶의 의미에 대해 같은 시각을 공유하는 사람들, 우리가 애정을 가지고 또 우리에게도 애정을 가져다주는 사람들을 필요로 한다. 진짜 공동체를 잃어버리면, 특히 원래 갖고 있던 것을 잃어버리면, 우리는 공동체의 부재를 강하게 체감한다.
📎 ”아무 때나 와서 아무거나 해도 괜찮아.“ 라고 말하는 단체보다 ”우리는 네가 필요해. 너한테 맡길 일이 아주 많아. 전부 네게 의지할 거야.“ 라고 말하는 단체에 자원봉사자가 몰리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학교에서도 학생들에게 요구하는 기대치가 높고 엄격한 선생님들일수록 따르는 학생들이 많은 경우가 종종 있다. 사람들은 책임을 지기 원한다. 책임감이 우리를 의미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 피상적인 삶
📎 깊이는 대개 새로움을 이긴다. 이를 린디 효과 Lindy effect 라고 부른다.
뉴욕의 오래된 식료품 가게에서 이름을 따온 린디 효과는 오랫동안 살아남은 생각이나 관습일수록 미래에도 계속 유지될 확률이 높은 현상을 가리킨다. 2017년 여름에는 피젯 스피너(손가락에 끼워서 돌리는 장난감)가 유행했지만, 100년 후에도 살아남을 확률이 높은 것은 줄넘기이며, 올해의 블록버스터 영화보다 지금도 사랑받는 고전 영화가 50년 후에도 계속 사랑받을 가능성이 크다.
📎 아리스토텔레스는 도덕적 가치를 세우는 일이 양극단 사이에서 균형을 이루는 기술과 같다고 가르쳤다. 용기는 비겁함과 무모함 사이에서 균형을 이룬다. 재치는 지루함과 우스꽝스러움 사이에서 균형을 이룬다. 친절은 시비와 아첨 사이에서 균형을 이룬다. 우리는 모두 어떻게 하면 올바르게 균형을 잡을 수 있을지 궁금해한다. 융통성을 누리되 결정 마비에 걸리지 않고, 진짜 자아를 찾되 아노미에 빠지지 않으며, 피상적이지 않은 새로움을 추구하려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가?
4장 | 해방 vs 헌신
✍🏻 인생은 자유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비자발적 헌신에서 벗어나야 하는 것은 맞지만 그것만이 삶을 충족시키는 것은 아님. 이 자유를 더 나은 수준으로 발전시키려고 할 때면 자유의 도구 그 이상이 필요. 자유로운 세계에 비판, 회의주의, 분석만으로는 부족하며 창의성, 신념, 통함, 영감도 필요함.
진짜 자아를 찾는 극적인 순간을 맞이한다면, 그날 이후에는 , 글쎄, 그 다음에는?
📎 ”비전이 없는 곳에서 사람들은 멸망한다.“라는 말이 있다. 자유는 우리 정체성의 절반밖에 채우지 못한다. 나머지 절반을 채우는 것은 헌신이다. 사람들은 자유롭길 원하지만, 속박에서 벗어난 다음 무언가를 하기를 원한다.
📎 전념하려면 ‘전념하기의 미덕’을 가꿔야 한다. 먼저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목표를 마음속에 그릴 수 있는 상상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통합력도 있어야 한다. 집중할 수 있는 집중력, 새롭지 않아도 계속해서 같은 일을 반복할 수 있는 근성, 관계를 지탱하는 데에 필요한 열정도 중요하다. 열정이 있으려면 존경심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전념하는 능력, 즉 다른 선택지가 있어도 계속해서 하나로 매달릴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5장 | 전념하기의 영웅
✍🏻 청년들은 대개 무언가 크고 대단한 일에 헌신하기를 원한다. 대의를 위해 ”이름을 날리는“ 영웅이 되고, 따분한 일상 따위는 뒤로 한 채 거침없이 새로운 모험을 찾아 떠나는 로맨틱한 상상을 꿈꾼다. 이러한 충동은 자발적 전념하기의 길로 우리를 이끌 수도 있다.
그러나 ‘자발적 헌신’이라고 하면 지나치게 위대하고 용감한 순간들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할리우드식 ‘용 죽이기’ 인 것이다. 이것은 ”나라면 어떻게 할까?“에 기반을 둔 행위다. 매우 특별하고 이례적인 순간에 행동함으로써 자발적 헌신을 발휘하는 것.
이것의 문제는 현실에서는 이렇게 극적인 순간이 닥쳐도 실제로 우리가 상황을 뒤집기 어렵다는 것. 완벽한 타이밍의 감동적인 연설도 전체 여론을 바꾸지 못함. 대규모 집회나 파업도 큰 도움이 되지 않음. 현실속의 용 죽이기에는 시간이 걸림.
📎 진정한 변화는 할리우드식 ‘용 죽이기‘와 달리 시간이 걸린다. 관계를 맺는 것도, 망가진 관계를 회복하는 것도 긴 시간이 필요하다. 이방인을 이웃으로, 공간을 장소로 바꿔서 공동체를 이루는 것도, 분열된 공동체를 치유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 원하는 결과를 즉시 얻을 수 있는 완벽한 청사진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변화의 과정은 느리고 유기적이다. 빠르고 기계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다.
📎 이런 말이 있다. ”처음에 사람들은 당신을 무시할 것이고, 다음에는 비웃을 것이며, 다음에는 싸울 것이다. 그리고 비로소 당신은 승리할 것이다.“ 하나의 단계만 해도 오랜 시간이 걸린다.
바위가 두드리는 석수를 보아라. 100번을 두드려도 실금 하나 가지 않다가 101번째 망치질을 하는 순간 바위가 쩍 하고 둘로 갈라진다. 그러나 이는 101번째 망치질의 결실이 아니라, 지금까지 두드린 100번의 망치질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 개혁가 제이콥 리스(Jacob Riis)
📎 삶에 대의와 신념을 부여하는 것은 숭고하다. 그러나 일상에 대의와 신념을 부여하는 것은 그보다 더 숭고하다.
6장 | 반문화 둘러보기
📎 전념하기를 향해 가는 길도 여러 갈래로 나뉜다. 우리가 헌신할 수 있는 대상은 무궁무진하다.
- 시민 citizens
- 시민의 전념하기는, 승리를 이룬 후에는 멋져 보이지만, 그 과정은 험난하다. 마침내 이상을 실현한 사람들은 ’영웅’이지만, 그 과정 중에 있는 사람들은 ‘미친 사람’으로 불린다.
- 애국자 patriots
- 오늘날은 애국심, 애향심 등의 단어가 잘못 사용되어 마치 지역주의와 같은 뉘앙스를 풍기기도 하지만 내가 속한 장소를 사랑하는 마음은 소중한 것이다. 애국심은 우리나라가 ‘최고’라서 사랑하는 것이거나 우리나라가 유일하게 위대하고 정의롭다고 믿어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알고, 내가 속한 나라이기 때문에 사랑한다.
- 진정한 의미의 애국심은 지배하고 배척하는 마음이 아니라, 국가와 사람들에게 헌신하는 마음이다.
- 장소에 헌신하면 세계의 한구석이 지닌 멋진 면들을 속속들이 전부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장소가 서로 어떻게 연결됐는지 전체성wholeness을 확인하는 시간을 가질 수도 있음.
- 건축가 builders
- 건축가의 전념하기는 꿈을 현실로 만드는 형태를 취함. 미래에 대한 비전이 있고, 그 비전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길고 험난한 여정을 선택했다는 점에서 건축가는 시민과 공통점이 있지만 이미 존재하는 현실을 이상적인 방향으로 밀거나 끌어당기는 시민과 달리, 건축가는 무언가를 창조함으로써 자신의 비전을 미니어처로 미리 그려봄.
- 관리인 stewards
- 이미 존재하는 것을 유지하려면 누군가는 관리인이 되어야 한다. ”내가 해야 한다,“라는 생각이 세상을 지탱한다. 관리인 정신은 문화의 번영에 없어서는 안 되는 특성이다. 우리가 물려받은 ”기관, 사고방식, 이야기, 노래, 전통, 관습“은 모두 보살핌이 필요하다.
- 관리인 정신이 무언가를 유리 상자 안에 넣고 가만히 보존하는 것을 가리키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식물이나 동물을 돌보듯이 무언가를 살아있게 유지하는 것을 뜻함. 관리인 정신은 능동적임.
- 무언가를 지키려면 일종의 책임감과 목적의식이 필요하죠.
- 장인 artisans
- 기술을 연마하는 것.
- 오랫동안 꾸준히 기술을 연마하는 수준이 장인이 아니다. 진정한 장인은 고수의 경지에 이른 후에도 활동을 멈추지 않는다.
- 어떤 장인은 그들의 최고작, 즉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쏟아부은 단 하나의 ‘위대한 작품‘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그들이 만든 코퍼스 corpus, 즉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고유한 분위기로 기억되는 경우가 많다.
- 윌라 캐퍼스; 예술가는 ‘자신만의 빛으로 집단의 감정과 경험을 표현한다.’ 우리가 어떤 장인의 코퍼스와 사랑에 빠질 때,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바로 그 한결같은 ‘빛’이다.
- 동료 companions
- 전념하기의 마지막 갈래이자 가장 중요한 헌신은 다른 사람에게 헌신하는 것이다.
- 동료는 아름다운 단어다. ‘함께’라는 뜻의 ‘com-’과 ’빵‘이라는 뜻의 ’pan-’이 합쳐진 ‘companion’은 ’빵 한쪽도 다른 사람과 나눠 먹는 사람‘을 가리킨다. 누군가의 동료가 되려면 그들의 삶에 함께 존재하며 동행accompany 해야 한다.
- 동료는 삶의 전투를 치른 후에 상처 입은 우리를 곁에서 어루만져주는 사람들이다.
- 그런 의미에서 가장 훌륭한 교사란 수업을 잘하는 선생님이 아니라 배움의 과정 내내 학생들과 동행하는 선생님. ’막히면 도움을 요청할 사람이 언제나 곁에 있음‘을 아는 아이들은 두려움 없이 문제에 도전하고 이를 해결했음.
- 누군가에게 신뢰할 수 있는 동료가 되는 것은 금세 또는 쉽게 이룰 수 있는 것이 절대 아님.
- 멘토링 프로그램에서 제일 무던하고 평범한 봉사자가 결국에는 최고의 멘토가 될 때가 많음. 이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매력이나 리더십이 아니라 꾸준함과 헌신이기 때문.
- 좋은 친구가 된다는 것은 상대방과 완벽하게 잘 맞는 사람 또는 공통점이 아주 많은 사람이 아니라, 그저 오랜 시간에 걸쳐 ’좋은 친구가 되는 기술을 쌓은‘ 사람이다.
7장 | 후회에 대한 두려움과 목적의식이 주는 자유
📎 전념하기의 길을 가고자 할 때 우리는 종종 후회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무언가에 전념했다가 나중에 다른 것에 전념하지 않은 것을 후회할까 두려워한다.
📎 무언가를 결정하는 일이 고통스러운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decide(결정하다)‘에 있는 ‘-cide’는 ’homicide(살인)‘에 있는 것과 같이 무언가로부터 분리하기 위해 ’잘라내다’ 또는 ‘치다’라는 의미가 있다. 한 부분은 남겨놓고, 나머지는 버린다는 뜻이다.
✔️ 부담감 내려놓기
📎 후회할까 두려운 마음을 극복하려면 선택에 대한 부담감을 내려놓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전념하기를 결심했다고 해서 거기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평생 절대로 포기하면 안 되는 것도 아니다.
📎 전념하기는 관계를 맺고 유지하는 일이며, 관계는 생명체와 같다. 그리고 모든 생명체는 언젠가 죽는다. 삶이 헌신에서 멀어지면 더는 관계가 아니다.
📎 전념하기를 주장하는 책에서 그만두기를 권하는 것이 의아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선택한 길이 잘 안 풀릴 수도 있다는 생각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전념하기에서 핵심적인 요소다. 그래야 부담감 없이 전념하고자 결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 결정하고 행동하기
📎 결정 마비를 극복하는 데에 유용한 방법 중 하나는 감정의 도움을 받는 것.
📎 감정의 도움을 받아 결정하는 방법은 수 세기 전부터 예수회의 관행으로 내려오고 있는 이냐시오적 식별 Ignatian discernment의 핵심. 이냐시오적 식별은 마음을 깨끗하게 비운 후 각각의 선택지를 깊이 그려보면서 그때마다 내 감정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느껴보는 것. 선택지의 장단점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단순히 선택지를 세세하게 검토하는 것 이상의 행위다. 선택지가 아니라, 선택지가 주어졌을 때의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 결정을 내렸으면 이제 움직여야 한다. 가만히 있으면 후회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슬그머니 다시 돌아올 것이다. 우리는 행동으로 옮기고 난 후에야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 “일단 해보고 생각하라.“라는 말에는 이러한 통찰력이 담겨 있다.
📎 여러 선택지를 두고 고민할 때 가장 완벽한 미래에 가까워질 수 있는 선택지를 고르는 것이 목표인 사람들이 있다. 이는 정답이 이미 정해진 퀴즈를 푸는 것과 같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미래가 이미 존재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의 선택이 미래를 만든다. 우리가 헌신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 된다.
✔️ 전념하기에는 가속도가 붙는다
📎 일정 지점에 이르면 전념하기에 가속도가 붙는다. 전념하기는 스스로 생명력을 얻는다. 그때부터는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그리 많은 의지가 필요하지 않다.
✍🏻 전념하기가 가속도를 얻는 이유 두 가지 이유
- 더 많이 헌신할 수록 더 많이 보이기 때문
- 외부에서는 내가 헌신하려는 대상의 단편적인 모습밖에 보이지 않지만 그 방에, 관계에, 공동체에 들어서면 모든 것이 눈에 들어온다. 그렇게 가속도가 붙는다. 이는 인간관계와 매우 흡사한데 먼발치에서 보면 관심이 생기다가 관계에 더 깊이 들어가면 사랑에 빠진다.
- 우리가 심리적으로 전념하기에 적응하기 때문
- 인간은 ‘심리적 면역 체계’를 갖고 있음. 인간의 뇌는 주어진 환경에 만족하기 위해 특히 더 노력함. 복권 당첨자와 불의한 사고 희생자를 인터뷰 해보면 그렇게 큰 사건을 겪고도 몇 년만 지나면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낌.
- 심리적 면역 체계는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짜내는 방식으로 작용함.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에는 의미를 덜 두고,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기 시작함. 그래서 사람들은 과거의 결정이 옳았는지 곱씹으며 괴로워하기보다 그렇게 결정했던 이유를 합리화함으로써 과거의 결정에 심리적으로 적응한다.
- 그러나 이러한 능력은 우리가 결정을 계속 유지했을 때만 발휘됨. 의사결정을 너무 쉽게 뒤집을 수 있으면 이처럼 긍정적인 심리적 적응이 방해 받을 수 있음.
✔️ 전환하기
📎 모든 헌신에는 전환이 수반된다. 누군가 또는 무언가에 진정으로 헌신할 때마다, 어떤 면에서 우리는 아예 다른 사람이 된다.
📎 선택하고, 행동하고, 전환하고, 공표하는 이 모든 과정을 마치고 나면, 헌신의 결심이 내 정체성에 선명하게 새겨진다. 대개 이쯤 되면 그때까지 남아 있던 ‘후회에 대한 두려움’도 전부 사라진다. 나의 외부에서 헌신을 선택하고 그것이 잘 맞을지 고민하는 대신, 그것을 내 안으로, 나와의 관계 속으로 가져와서 내 정체성의 일부가 되게 한다. 두려움은 희미해진다. 이제 헌신은 선택이 아니라, 내 일부가 되었기 때문이다.
✔️ 사명
📎 전념하기의 여정은 자신의 ‘사명’을 깨닫는 과정, 즉 부름을 듣고 그것을 실천하는 과정으로 볼 수도 있다. 이에 잘 어울리는 퀘이커 격언이 있다. ”삶이 내게 말하게 하라.“ 그러면 작가 파커 파머가 설명한 것처럼 먼저 내 존재의 의미를 말하는 마음속 깊은 곳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그 목소리에 대한 응답으로 자신이 받은 사명을 세상에 알려야 한다.
📎 사명 의식은 헌신에 어떤 신성함을 부여한다. 내 헌신이 내가 임의로 선택한 길이 아니라, 더 깊은 곳에서부터 정해진 뜻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내부의 목소리는 우리가 모든 것이 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한다. 그래서 사명 의식이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한계를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에 사로잡히지도 않으며, 자기가 가장 잘할 수 있는 부분을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사실을 이해한다.
📎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우리의 삶은 저마다 의미가 있고 목적이 있다. 자신의 사명을 소중히 여기며 자신의 목적을 좇을 때 우리는 처음에 우리에게 말을 걸었던 깊은 내부의 목소리에 가까이 머물 수 있다. 후회에 대한 두려움의 반대편에는 이처럼 목적의식이라는 귀한 선물이 준비되어 있다.
8장 | 유대에 대한 두려움과 오랜 관계가 주는 편안함
✔️ 정체성, 평판, 통제감
- 정체성
- 우리가 무언가와 유대를 형성하면 그것과 닮아갈 가능성이 생기는데, 이는 우리의 정체성에 위협이 된다.
- 내가 나를 이해하는 관점을 위협하는 것이 정체성 위협이라면, 다른 사람들이 나를 보는 관점을 위협하는 것은 평판 위협.
- 평판
- ”타인이 등장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타인의 평가를 받는 위치에 놓인다. 타인에게 나는 객관적 대상이기 때문이다.“
- ‘타인’이 ‘지옥’인 이유는 타인의 존재로 인해 내가 나를 ’타인의 관점에서‘ 평가하게 되기 때문이다.
- 평판 위협은 다른 사람들의 평가를 두려워하는 마음. 만약 내가 무언가에 헌신한다는 사실을 남들이 알면 그들이 나를 보는 관점, 즉 내 평판을 통제하지 못할까 봐 두려워하는 것.
- 통제감
- 전념하기는 내 시간, 에너지, 의사결정 등에 대한 통제감을 위협함. 유대를 형성하면 우리는 그에 수반하는 혼란 전체를 다뤄야 함.
- 📎 때로는 혼란이 아닌 지나친 질서가 통제감을 위협할 때도 있다. 모든 공동체에는 따라야 할 의식, 격식, 관습, 규범이 있고, 대부분은 귀찮고 번거롭다. (..) 처음에는 ’내 의지로‘ 나보다 거대한 무언가에 헌신하기로 선택했지만, 어쨌든 그것은 나보다 거대한 것이므로 결국에는 내가 선택한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요구해올 것이다. 그러면 이런 의문이 떠오른다. ”이 부분에 따르는 것은 동의해. 그렇지만 나머지 전체에 따르는 것도 내가 원하는 것일까?“
- 📎 또한 유대는 내가 원하는 것 이상으로 나를 노출한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전념하려면 내 강점, 약점, 능력, 관심 등 나에 대한 많은 부분을 드러내야 한다. 유대가 길어질수록 드러나는 부분은 더 ㅁ낳아진다. 결국에는 서로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진실 속에서 모두가 함께한다.
- “사랑 받기 원한다면, 내 치부를 드러내는 굴욕적인 시련을 받아들여야 한다.”
✔️ 통제감과 심어진 자아
📎 공동체를 이루는 사람은 개인적 통제와 공동체적 통제 사이에 있는 이 골짜기를 걸어가는 사람들이다.
📎 사람들이 결혼하는 이유는 서로를 사랑하고 서로의 동반자가 되는 것이 기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부분의 합보다 전체가 더 크기에, 즉 둘이 떨어져 있을 때보다 함께할 때 더 강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두 사람이 함께 이루는 강함에 도달할 때까지, 그들은 안정적인 미혼 상태가 안정적인 기혼 상태로 변하는 과도기의 고통과 어려움을 헤쳐나가야 한다.
📎 무언가와 유대를 맺는 것은 어렵고 힘들다. 타인이란 존재는 귀찮고, 성가시고, 지나치게 요구하고, 강요하고, 오해하고, 실망하고, 겁주고, 잘난 척하고, 판단하고, 말이 많고, 상처를 주고, 비난한다. 그러나 혼란 없이 세울 수 있는 공동체는 없다. 어떤 집단이든, 그 구성원이 2명이든 200명이든, 어쨌든 같은 길을 가고자 하는 집단은 다 그렇다.
9장 | 고립에 대한 두려움과 깊이가 주는 기쁨
📎 고립에 대한 두려움은 내가 고를 수 있었던 다른 선택을 아쉬워하는 것만이 아니라, 전념하지 않았더라면 누릴 수 있었던 모든 새로운 순간을 아쉬워하는 것이다. 전념하기 때문에 포기한 경험이 셀 수 없이 많았던 것처럼 느껴진다.
✔️ 새로움과 목적
📎 지나치게 극단적으로 새로움만 추구하는 사람은 삶의 모든 것이 재미있거나, 반대로 지루하다고 느낀다.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에 빠지는 기분을 사랑한다. 신념과 뜻이 있어서 투쟁하는 것이 아니라, 재미있는 일이 일어날 것 같아서 투쟁한다. 여행자만이 느낄 수 있는 흥분과 설렘이 좋아서 어느 곳에도 정착하지 않는다. (..) 그러나 이러한 게임을 영원히 지속할 수는 없다.
📎 목적은 이와 반대로 작용한다. 처음에는 재미있어도 시간이 지날수록 빛이 바래는 새로움과 달리, 목적은 대개 지루하게 시작해서 점점 더 흥미로워진다. 새로움이 삶의 원동력인 사람은 요즘 유행하는 새로운 것을 놓칠까 봐 늘 전전긍긍한다. 그러나 목적이 삶의 원동력인 사람은 그와 다르다. (…) 목적의식이 있는 사람들, 즉 깊이 전념한 사람들과 이야기해 보면 그들이 자신이 새로움과 깊이를 맞바꿨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은 깊이가 곧 궁극적인 새로움이라고 말했다.
✔️ 깊이 파고드는 것을 막는 위협들
- 지루함 boredom: 오랫동안 전념하려면 같은 일을 끊임없이 반복해야 한다.
- 산만함 distraction: 길을 가다 보면 온갖 반짝이는 것들이 계속 눈에 띈다.
- 불확실성 uncertainty : 내가 올바른 결정을 했는지, 바른길을 가고 있는지 불확실하기 때문에 불안하다.
- 유혹 temptation : 남의 떡이 더 커 보이는 심리
- 목표 변질 mission creep: 목표에 전념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본질을 잊고 다른 목표만 좇는 경우
- 고통과 피로 : pain & exhausion
📎 전념하기를 막는 위협들을 물리칠 수 있는 무기. 가장 강력한 무기는 아마도 ‘이야기’일 것이다. 자기 자신에게 (다른 사람들에게도 공유하면 더욱 좋다) 내가 왜 이 일에 전념하기로 했는지 말하는 것이다.
📎 또 다른 무기는 장거리 여정을 단계별로 쪼개서 생각하는 방법이다. 작은 목표를 세우고 작은 승리를 거두며 나아가는 것.
✔️ 평범함을 특별함으로
📎 우리가 가장 큰 기쁨을 느끼는 순간은 가장 평범한 것일 때가 많다. 연인과의 저녁 식사, 아이들과 오순도순 보내는 시간, 친구들을 만나서 하는 술 한잔, 취미 활동으로 보내는 오후 시간 등이 그렇다. 이렇게 평범한 순간이 즐거운 이유는 깊이가 있기 때문이다. 새로움에서 찾는 설렘은 경험이 쌓일수록 무뎌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꾸준한 관계를 통해 평범한 삶을 설레게 만들면, 시간이 지날수록 행복도 더욱 커진다.
📎 깊이가 의미를 부여하는 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깊이는 또한 우리가 의미를 좀 더 잘 알아차리게 해준다. 한 가지 주제를 깊이 파고들면 미묘한 차이도 구분할 수 있는 시야가 생긴다.
📎 “모든 의미는 지속할수록 축적된다.” 이는 다큐멘터리 제작자 켄 버즈의 좌우명이다.
13장 | 홍수와 숲
📎 한 가지 방법은 향수nostalgia를 이용하는 것이다. 새로운 문화와 관습을 구축할 수 없다면, 또는 물려받은 문화와 관습을 유지할 수 없다면, 우리 문화가 좀 더 생생하게 느껴졌던 시절의 기억을 붙잡는다. (..) 그러나 향수는 오랫동안 유지될 수 없다. 다시 필름을 돌려볼 때마다 화질은 떨어지고, 마법은 희미해진다.
📎 전념하는 삶은 편안하다. 일상에서 많은 의지력을 행사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지도 없이 길을 가다가 갈림길을 만나면, 즉 삶에 지침이 없으면 그때마다 매번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할 것인지,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그러나 전념하기는 좀 더 중요한 의사결정을 위해 평소에 에너지를 아껴준다. 그리고 전념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개인적인 행동이 남들에게 어떻게 비칠지 별로 걱정하지 않는다. 그저 헌신의 지침에 따르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술에 취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에 파티에서도 술을 마시지 않는다. 학교에 간 조카를 데리러 가야 하므로 퇴근하자마자 집으로 향한다.
3. 읽고 나서
여러가지 통찰이 깊은 책이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시대가 점점 더 빠르게 변화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진정한 가치에 대하여 한번씩 떠올려 보았을 것이다. 이 책은 '전념'이라는 이 본질적인 가치를 통해 단기적인 성과에 집착하기보다 장기적인 목표와 깊이 있는 관계를 추구하는 것이 삶을 얼마나 더 의미 있게 만드는지 주장한다. 늘 더 깊이 있는 삶을 꿈꾸며 고민하는 나에게 매우 강렬하게 다가왔다. 책에 제시된 다양한 사례들은 실제로 전념이 어떻게 개인과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이 책을 통해 내 자신의 가치와 목표에 대해 다시금 돌아보게 되었고, 꾸준한 노력과 헌신이 중요한 이유를 깊이 깨달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