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소개
『떠나간 자와 머무른 자』 는 엘레나 페란테의 나폴리 4부작 중 세 번째 책으로, 엘레나와 릴라의 우정이 성인기로 넘어가면서 더욱 복잡하고 깊은 갈등과 변화를 맞이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책에서는 중년기에 접어든 두 주인공이 결혼과 출산, 육아를 경험하며 각자의 자리에서 삶을 살아가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나폴리를 떠나는 레누와 나폴리에 머무르는 릴라의 삶은 급변하는 사회와 더불어 점점 복잡하고 다양해진다. 이 둘의 관계에서 우리는 여전히 애정과 증오, 사랑과 질투, 우정과 연대 등 인간의 모순적인 감정을 동시에 발견할 수 있다.
'나폴리 4부작'을 쓰는 동안
나는 사건과 캐릭터, 감정을 다시 다듬을 필요가 없었다.
그 어떤 계획적인 일도 하지 않았다.
존재의 얽힘과 개인의 삶이
여러 세대의 삶과 관련되어 있다면
이것들은 다시 살펴볼 만하다.
문학은 그 '얽힘'으로 구성되어 있다.
역사적으로 봤을 때 레누와 릴라는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으로 소외된 자들이다.
그러나 그들의 말과 행동은 모두 역사의 일부다.
나는 주인공들의 말이 사소한 역사적 사실에
진실성을 부여한다고 생각했다.
그 역사적 사실이 덜 낡고
덜 진부해지리라고 확신했다.
- 엘레나 페란테 -
2. 줄거리
소설은 엘레나의 작가로서의 성공과 그로 인한 삶의 변화로 시작된다. 엘레나는 자신의 첫 소설이 성공을 거두며 문단에서 주목받고, 명망 있는 남자 피에트로와의 결혼을 통해 사회적으로 안정된 삶을 살게 된다. 하지만 그녀는 이 성공이 진정한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내면적인 갈등을 겪는다. 결혼과 출산으로 인해 작가로서의 정체성도 흔들리기 시작하며, 엘레나는 자신의 삶이 본질적으로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지 끊임없이 고민한다.
한편, 릴라는 스테파노 카라치와의 불행한 결혼 생활에서 벗어나 니노 사라토레와 사랑에 빠져 그와 동거를 시작하지만 결국 그마저 실패로 끝나고 독립적으로 살아가며 공장에서 노동자로 일하고 있다. 그녀는 자신의 독립을 도와준 엔초와 함께 산 조반니아 테두초로 거처를 옮겨 극도로 가난한 환경 속에서 살아간다. 그녀는 브루노의 햄 공장에서 일하며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을 겪으며 자신의 반항적인 성향과 사람을 끌어모으는 능력을 발휘해 공장 내 노동 착취에 대해 작고 크게 투쟁하기도 하며 자신의 삶을 이어나간다.
이 책에서 중요한 사건은 엘레나와 릴라가 다시 재회하는 장면이다. 각자 다른 길을 선택한 두 사람은 서로의 삶을 다시 비교하게 되고, 그 차이에서 비롯된 감정적 복잡성이 극대화된다. 릴라는 여전히 엘레나의 성취를 경계하고 질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성취에 대해 어느 정도 존경을 보인다. 반면 엘레나는 릴라의 강인함과 투쟁적인 태도에 감동을 받으면서도, 자신이 그 모든 것을 놓아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고민에 빠지기도 한다.
결정적으로, 엘레나는 옛 연인 니노와 재회하면서 또다시 인생의 큰 갈등을 맞이하게 된다. 니노와의 재회는 그녀에게 새로운 열정과 혼란을 안겨주며, 엘레나는 안정된 결혼 생활과 문학적 성공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여전히 불완전한 상태에 있음을 자각한다. 니노와의 관계는 엘레나가 자신의 내면적인 공허함을 다시 한 번 직면하게 만드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
3. 인상 깊은 구절
📎 나는 내 예비 신랑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에 대한 애정에 확신이 들었다. 자신의 가치를 잘 알고 있으면서 필요할 때는 자연스럽게 스스로를 내려놓을 줄도 아는 사람이었다.
📎 "다시는 내게 책을 읽으라고 하지 말아줘. 나는 그럴 만한 사람이 못 돼. 난 네가 항상 최고였으면 좋겠어. 나는 네가 이보다 훨씬 뛰어난 글을 쓸 수 있다고 확신해. 네가 더 잘하기를 원해. 그게 내 가장 큰 소망이야. 네가 뛰어나지 못하면 내 존재는 아무런 의미도 없으니까." 나는 속삭였다. "걱정하지 마. 언제나 네 생각을 말해줘. 그래야만 정말 나를 돕는 거야. 어렸을 때부터 네가 항상 나를 도와줬잖아. 네가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
📎 그때가 우리 우정사에서 최상의 순간이었는지 아니면 최악의 순간이었는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확실한 것은 나의 무능력함을 인정하는 데 릴라가 예전보다 더 확실하게 거울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내 실패를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는 계기가 됐다는 사실이다. 나는 릴라의 의견이 시어머니의 의견보다 훨씬 권위 있게 느껴졌다. 더 납득할 만하고 더 애정어린 의견이라고 생각했다.
📎 무엇인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은 어린 시절부터 나를 사로잡았지만 나는 그제야 처음으로 그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무엇인가 되기를 원했다. 그 무엇인가가 뭔지는 알지 못했지만 말이다. (...) 물론 그동안 무엇인가가 되기는 했었다. 그것만은 확실하다. 뚜렷한 대상도, 진정한 열정도, 확실한 야망도 없이 말이다. 릴라는 중요한 사람이 되는데 나만 혼자 뒤쳐질까봐 무엇인가가 되고 싶었을 뿐이다. 중요한 것은 뭐라도 되는 것이었으니까. 나는 무엇인가 되기를 바랐지만 릴라의 영향에서 벗어나지는 못했다.
📎 이제 나는 다시 무엇인가가 되어야 한다. 이번에는 오직 나를 위해서 그렇게 되어야 한다. 릴라에게서 벗어나 성숙한 인격체로서 말이다.
📎 나는 성숙이란 결국 삶의 굴곡을 호들갑 떨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로 마음먹었다. 일상적인 삶과 이론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며 길을 걸어가는 것이라고, 변화를 기다리며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정확하게 파악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 '나폴리 4부작' 제2권 『새로운 이름의 이야기』를 관통하는 정서가 두려움이었다면 제 3권 『떠나간 자와 머무른 자』 를 관통하는 정서는 불안감이다. (옮긴이의 말)
4. 읽고 나서
제 3권 『떠나간 자와 머무른 자』를 읽으며 가장 크게 와닿은 것은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느껴지는 복합적인 감정들이었다.
이 책은 자아 탐구의 여정에서 겪을 수 있는 혼란, 설렘, 두려움, 기쁨을 섬세하게 그려내며, 두 주인공 엘레나와 릴라가 각자의 길을 걸어가면서 겪는 내적 갈등을 강렬하게 전달한다. 두 여성은 우정과 사랑, 일에 대한 열정과 현실의 벽에 부딪히며, 또한 임신과 출산이라는 중요한 경험을 통해 여자로서의 성장과 변화를 맞이한다. 이 모든 과정은 나의 삶에 비추어 볼 수 있을 만큼 공감이 갔다.
특히, 엘레나와 릴라가 처한 서로 다른 환경에서 각자의 삶을 만들어가는 모습은 단순한 대비를 넘어 깊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엘레나는 작가로서 성공을 이루지만, 여전히 내면적 불안에 시달리며 완전한 행복을 찾지 못하고 있다. 반면, 릴라는 가난과 투쟁 속에서도 자신의 존엄성을 지키며 현실에 맞서 싸운다. 이들의 서로 다른 선택과 그 선택이 만들어내는 결과는 자아를 찾는 여정이 얼마나 복잡한지, 그리고 한 번의 선택이 인생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를 보여준다.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엘레나가 문학적 성공을 이루고도 여전히 릴라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책을 읽으며 엘레나라는 인물을 책 밖에서 직접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엘레나의 관점에서 자신을 서술하는 대신, 다른 사람의 시선에서 그녀가 어떻게 비춰질지 궁금했다. 내가 그녀를 바라볼 때, 그녀는 훨씬 더 나은 평가를 받을 자격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러면서 엘레나라는 인물에 한층 더 빠져들게 되었다.
이 두 사람의 관계는 마치 평생 이어질 운명처럼, 엘레나의 삶 곳곳에 깊은 흔적을 남기고 있으며, 릴라 또한 엘레나에게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 이 복잡한 상호 의존성은 우정과 경쟁이 얼마나 긴밀하게 얽혀 있는지를 새삼 일깨워준다. 두 사람은 서로를 마치 거울처럼 바라보며, 자신에게 없는 부분을 상대방에게서 찾으려 했던 것 같다. 이러한 관계의 역동성은 읽는 내내 감정적으로 깊이 이입하게 만들었다.
책을 덮고 나서도 마음에 남았던 것은, 두 주인공이 각기 다른 길을 선택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서로를 바라보며 자신을 정의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어지는 나폴리 4부작 중 마지막 권 『잃어버린 아이 이야기』 에서는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