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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잃어버린 아이 이야기 - 엘레나 페란테 | 영원히 끝내지 못할 것 같았던 이야기 | 끝내 잃을 수 없는 우정 | 소설 책 추천 | 뉴욕타임즈 선정 21세기 최고의 소설

by lofromis 2024. 9.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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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잃어버린 아이 이야기』는 엘레나 페란테의 '나폴리 4부작' 마지막 이야기다. 

제 3권 『떠나간 자와 머무른자』 에서 릴라와 레누가 결혼과 출산 등을 경험하며 각자의 삶을 살아갔다면 제 4권 『잃어버린 아이 이야기』에서는 이들의 우정이 다시 시작된다. 페란테가 써내려간 강렬하지만 섬세한 이야기 속에서 릴라와 레누 사이에 존재하는 우정과 애증은 물론 여성 일반에 내재하는 모순, 여성이 겪는 보편적 경험을 발견할 수 있다.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은
나를 위한 창작 공간이었다.

나폴리는 내 유년 시절과 청소년 시절,
그리고 사회 초년생 시절을 보낸 공간이다.
나의 이야기는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과
내가 사랑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나는 내가 아는 것에 대해 쓰지만
무질서한 방식으로 이 내용들을 다룬다. 
그 내용이 사소하더라도
나는 그 속에서 이야기를 뽑아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배경이 달라도
내 이야기의 뿌리는 나폴리다.

- 엘레나 페란테 - 

 

2. 줄거리

 『잃어버린 아이 이야기』는 나폴리 4부작의 마지막 책으로, 엘레나와 릴라의 우정이 가장 복잡한 양상으로 펼쳐진다. 

 

전작인 『떠나간 자와 머무른 자』에서 엘레나는 피렌체에서의 결혼 생활을 정리하고 어린 시절 사랑인 니노와 사랑에 빠져 남편과 아이들을 떠나 곳곳을 그와 함께 돌아 다니며 작가로서의 명성을 유지하려 애쓴다. 릴라는 고향 나폴리로 돌아와 노동을 하며 아들 젠나로를 키운다. 서로 다른 삶을 살아가는 두 여인은 결국 나폴리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 엘레나가 니노의 실체를 깨닫고 자신의 삶을 스스로 꾸려나가기 위해 나폴리로 돌아가기로 결심하면서 이들의 삶은 더욱 얽힌다. 엘레나는 릴라의 집 위층에 살게 되며 두 사람은 동시에 출산을 하게 되고, 이로 인해 애정과 질투가 섞인 그들의 우정은 지속된다. 

 

엘레나는 자신의 삶이 릴라의 영향에서 벗어났다고 확신하지만, 여전히 릴라의 평가에 영향을 받고, 특히 릴라의 딸 티나와 자신의 딸 임마를 비교하며 다시 열등감을 느낀다. 이처럼 딸들을 통한 비교와 질투가 두 여성의 관계에 새로운 균열을 일으키게 된다. 그 와중에 릴라의 딸 티나가 실종되면서 사건은 더욱 비극적으로 전개된다. 이 실종 사건은 릴라에게 큰 상처를 남기고, 그로 인해 릴라는 자신이 평생 지켜온 자아의 경계를 상실한 것처럼 느끼며, 내적으로 무너진다. 

 

또한, 이 책에서는 전후 이탈리아 사회의 폭력, 부패한 공권력, 그리고 계층 간의 불평등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부유한 나디아는 사회운동 후 해외로 도피할 수 있었지만, 가난한 파스콸레는 그럴 기회조차 얻지 못한다. 이는 사회적 불공정함을 여실히 보여준다. 한때 같은 뜻을 품고 함께 활동했던 그들이지만, 그들의 출발점이 달랐던 만큼 결말도 다르게 갈라진다. 나디아와 파스콸레의 상반된 운명은, 사회적 계층과 배경이 개인의 미래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이 책의 결말은 엘레나의 작가로서의 경로를 중심으로 마무리된다. 60대가 된 엘레나는 자신이 예전과 같은 작가로서의 역량을 발휘하지 못하는 현실을 실감한다. 그녀는 사라진 티나의 이야기를 소재로 삼아 자신과 릴라의 이야기를 담은 중편 소설 『어떤 우정』을 쓴다. 이 소설이 큰 인기를 끌어 엘레나는 다시 작가로서의 명성을 얻는다. 그러나 릴라는 엘레나가 자신의 이야기를 허락 없이 소설의 소재로 사용한 것에 대해 배신감을 느끼고, 그녀와의 연락을 끊는다. 이로 인해 엘레나와 릴라의 우정은 끝이 나게 된다. 

 

 

3. 인상 깊은 구절

📎 나는 진정 릴라가 내 이야기에 끼어들기를 바란다. 우리의 이야기를 쓰기 시작한 그 순간부터 나는 릴라가 그렇게 해주기를 간절히 원해왔다. 하지만 릴라가 정말로 내 이야기에 끼어들었는지 확인하려면 우선 이 이야기의 끝에 도달해야 한다. 지금 당장 확인하려 한다면 시작하자마자 막힐 것이다. 

 

📎 이제 이 갈림길에서 결단을 내릴 때가 왔다. 첫 번째 길로 갈 수는 없다. 우리 관계의 성격상 나를 통해야만 릴라에게 닿을 수 있으므로 나를 이 이야기에서 제외한다면 릴라의 흔적은 갈수록 찾기 힘들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두 번째 길로 갈 수도 없다. 내가 내 이야기나 자세히 늘어놓는 것이야말로 분명 릴라가 원하는 것일 테니 말이다. 

 

📎 나는 선택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어쨌든 결과적으로 릴라는 항상 자신에게 유리한 결과를 얻어낸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릴라가 나폴리를 떠나지 않은 이유가 단순히 사고의 한계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그럴 때면 나는 애초에 릴라의 원고는 존재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확신하곤 했다. 나는 지금까지 릴라를 과대평가했다. 릴라에게서 영원히 기억될 만한 것이 나올 리 없었다. 그런 생각을 하면 한편으로는 마음이 편해졌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진심으로 안타까웠다. 나는 릴라를 사랑했다. 릴라가 잊히지 않기를 바랐다. 하지만 릴라를 그렇게 만들어주는 것은 나여야만 했다. 그것이 내 임무라고 생각했다. 나는 어린 시절 릴라가 직접 내게 그런 과제를 주었다고 확신했다. 

 

📎 얼마 지나지 않아 처음에는 내가 쓴 작품 중에서 가장 뛰어난 것 같았던 그 책을 나는 더는 사랑하지 않게 되었다. 릴라는 어떻게 해서든 나와의 만남을 피하면서 내가 그 책을 증오하게 만들었다. 릴라는 그 책에 대해 나와 이야기하지도 않았고 내게 화를 내거나 내 뺨을 때리지도 않았다. 

 

📎 나는 릴라를 만나 항변을 듣고 내 입장을 설명해줘야 했다. 때로는 죄책감이 들고 릴라를 이해할 수 있었다. 때로는 나를 자기 인생에서 이토록 깔끔하게 잘라 내버리기로 한 선택 때문에 릴라를 증오했다. 노년기에 들어선 지금, 그 어느 때보다 서로의 존재와 유대감이 절실한 이 시점에 말이다. 릴라는 언제나 그했다. 내가 자신의 말을 따르지 않으면 나를 소외시키고 나를 벌하고 좋은 작품을 썼다는 만족감까지 손상시켰다. 나는 화가 났다. 이런 식으로 자기삭제를 연출하는 행위도 이제 내게 걱정보다는 분노를 자아냈다. (...) 이 모든 것은 오직 그리고 영원히 우리 둘만의 문제일 것이다. 

 

📎 타고난 천성과 자신이 처했던 환경 때문에 이루지 못했던 것을 내가 이루기를 바랐던 릴라와 그런 릴라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나만의 문제일 것이다. 나의 부족함 때문에 화가 나서 나에게 복수하기 위해 나도 자기처럼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만들려는 릴라와 수개월 동안 쓴 글로 그런 릴라에게 경계가 해체되지 않은 형태를 만들어주고 릴라를 이겨내 릴라에게 평안을 찾아주고 그로써 나도 평안을 찾으려 하는 나만의 문제일 것이다. 

 

📎 나 자신도 도저히 믿을 수 없다. 영원히 끝내지 못할 것 같았던 이 이야기를 끝마친 것이다. 이야기를 완성한 후 나는 인내심을 가지고 글을 꼼꼼하게 다시 읽어 보았다. 글을 다듬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단 몇 줄이라도 릴라가 내 글에 들어와 글에 이바지한 흔적이 없는지 찾아내기 위해서였다. 

 

📎 내 글에 릴라는 없었다. 내가 글로 쓸 수 있었던 내용만 있을 뿐이었다. 물론 릴라가 어떤 글을 어떻게 쓸지를 상상하다보니 내 글과 릴라의 글을 구분하지 못하게 된 것일 수도 있다. 

 

📎 그러니 이 긴 글이 대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나는 릴라를 다시 붙잡고 싶었다. 내 곁으로 다시 불러들이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죽을 때까지 내가 해낸 것인지 알 수 없을 것이다. 

 

📎 소설과는 달리 진짜 인생은 일단 지나간 후에는 명확해지기보다 모호해지는 법이다. 릴라가 이토록 명확하게 자신을 드러냈으니 이제 다시는 릴라를 보지 못해도 할 수 없다고 나는 생각했다. 

 

 

4. 읽고 나서

어떤 책들은 읽는 동안보다, 다 읽고 나서 더 큰 감동과 여운을 남기곤 한다. 엘레나 페란테의 나폴리 4부작이 바로 그런 책이었다.

 

엘레나와 릴라의 복잡한 우정과 삶을 담은 이 소설들을 연달아 읽으며, 그녀들의 선택이 때로는 아프게 다가오기도 하고, 때로는 이해되지 않아 답답함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끝까지 이 이야기를 놓을 수 없었던 이유는 결국 그녀들의 삶과 선택을 통해 나를 비춰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급변하는 사회의 불안 속에서, 거친 이웃 사회의 굴레 안에서 어떻게든 자신만의 삶의 이유를 찾아 치열하게 살아가는 이 인물들을 보며, 비록 나와는 다른 시대와 환경에 속한 사람들이지만 그들의 욕망과 열정을 충분히 느끼고 공감할 수 있었다.

 

이 책의 결말에서는 릴라의 딸 티나뿐만 아니라 많은 인물들을 떠나보내게 된다. 각자의 선택으로 인한 씁쓸한 관계의 이별도, 죽음으로 인한 안타까운 이별도 등장한다. 어린 시절부터 함께 해온 인물들의 서사가 깊게 펼쳐지다 보니, 그들을 떠나보내는 일이 아쉽게 느껴지기도 했고, 만약 각자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상상을 해보기도 했다.

 

엘레나와 릴라의 결말은 1권의 시작부터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듯, 결국 끊어진 우정으로 마무리된다. 엘레나가 글을 쓰기로 한 선택과 릴라가 엘레나로부터 사라진 선택은, 서로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상처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그들은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받았고, 이것이 공평하다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그들이 서로를 너무나 잘 알고 사랑했기에 그 상처의 깊이가 더 깊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동시에, 그 상처를 마음 깊이 새긴 채 살아갈 그들인 만큼, 그 우정은 평생 잊지 못할 흔적으로 남아 계속되지 않을까 싶다.

 

소설의 마지막 장면에서는 1권 『나의 눈부신 친구』에서 읽었던, '돈 아킬레'의 집에서 일어난 인형 사건이 떠오르게 된다. 그 사건은 엘레나와 릴라의 우정이 시작되는 출발점이었고, 릴라가 주도하고 엘레나가 뒤따르는 친구 사이의 기본적인 관계가 성립된 순간이었다. 어린 시절의 사소한 인형 놀이 사건이 이토록 큰 테마로 다시 등장할 줄은 몰랐다. 결말에 이르러 이 사건의 중요성을 재확인했을 때, 나는 놀라움과 당혹감을 동시에 느꼈고, 이 길고 긴 이야기를 처음부터 다시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까지 했다. 

 

그동안 여러 글을 통해 한 사람의 인생을 들여다보고 생각해본 경험은 있었지만, 이렇게 두 사람의 삶을 동시에 깊이 들여다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이 책은 1인칭 시점으로 진행되지만, 두 여자의 삶을 강렬하게 전달한다. 그 점이 나에게는 무척 흥미로운 독서 경험이었다. 다 읽고 나니 엘레나와 릴라가 마치 나의 친구인 것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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