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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새로운 이름의 이야기 - 엘레나 페란테 | 나폴리 4부작 | 우정과 경쟁 | 성장통은 쓰고 아프다 | 서로 다른 길을 걷지만 여전히 긴밀한 두 여성의 이야기 | 소설책 추천

by lofromis 2024. 9.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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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책 소개

이 책은 엘레나 페란테의 나폴리 4부작 중 두번째 책으로, 첫 번째 책 『나의 눈부신 친구』에서 이어지는 엘레나와 릴라의 청년기 이야기를 다룬다. 두 주인공은 서로 다른 길을 걷지만 여전히 긴밀하게 얽혀 있고, 우정과 경쟁, 갈등과 연대가 계속해서 이어진다. 『새로운 이름의 이야기』는 사회적 지위, 사랑, 자아 실현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두 여성이 겪는 복잡한 감정과 변화, 그리고 이탈리아 사회의 정치적, 경제적 격변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
제 소설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모두 실제로 존재합니다.
제가 본 여성들의 고통과 투지가
제 상상력에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소설 속 여성들은 모두 강하고 교육받았으며
자기 자신과 자신의 권리를 의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기치 못한 충격에 쉽게 부서지기도 합니다.
저는 이러한 울림을 늘 경험했고
그것을 잘 알고 있스빈다.
이는 제 글쓰기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글쓰기는 모순적이고 짓눌린 듯한 일상을
구체적으로 드러낸 삶의 재생입니다.
- 엘레나 페란테 -

 

2. 줄거리

두 번째 책에서는 릴라의 결혼 이후의 삶과 엘레나의 대학 생활이 그려진다. 릴라는 부유한 상인과 결혼하지만 결혼 생활에서 느끼는 억압과 배신감으로 고통을 겪는다. 반면 엘레나는 피렌체로 떠나 대학에서 공부하며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자신이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더 넓은 세계를 접하게 된다. 릴라는 자신의 결혼이 행복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고, 엘레나는 첫사랑과의 관계에서 혼란을 느끼며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한다. 두 사람의 관계는 이 과정에서 끊임없이 변화하고, 릴라의 결혼 생활이 무너지는 동안 엘레나는 사회적 상승을 경험하게 된다. 이 책은 두 여성이 선택한 길이 어떻게 각자의 삶을 변화시키는지 보여준다.

 

3. 인상 깊은 구절

📎 스테파노가 릴라의 사악한 힘을 제어할 수 있는 선한 힘이 나에게 있다고 인정해주니 왠지 으쓱해졌다. 차에서 내려 양장점에 가는 동안에도 스테파노에게 인정받았다는 생각에 나는 위안을 받았다. 스테파노에게 표준어로 그들의 행복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허풍도 떨었다.

 

📎 어느 순간부터 나도 릴라에게 내 마음을 완전히 털어놓지 않게 되었다. 어느 한편이 그런 반응을 보이면 다른 한편도 따라하기 마련이니까.

 

📎 릴라는 자기가 내 자리에 있었다면 해냈을 일을 내게 강요하고 있었다. 나를 정말로 책벌레의 삶에 얽매놓고 싶은 것이다. 정작 자신은 돈도 많고 예쁜 옷에다 집과 텔레비전에 자동차까지 모든 것을 갖고 있는데도. 원하는 것은 당연스럽게 뭐든지 가질 수 있는데도.

 

📎 릴라 스스로 자신이 불행에 익숙해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는 것 같았다. 아직 완전한 체념 상태는 아니었지만.

 

📎 릴라는 원래부터 색감이 뛰어나고 선을 그리는 데 소질이 있었다. 하지만 우리가 함께 작업을 한 그때만큼은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었다. 뭐라고 콕 집어서 말할 수는 없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그 무엇인가에 점점 압도되는 느낌이었다.

 

📎 릴라가 이루어낸 모든 일이 실은 매번 자신이 처했던 혼란스러운 상황의 결과물이었단 말인가.

 

📎 "릴라, 부탁이니 그곳에 가면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말아줘." 릴라는 의아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런 식이라니?" "지금처럼 말이야." 릴라는 잠시 침묵하다 내게 말했다. "넌 내가 부끄럽니?"

 

📎 아르만도는 내게 적대적일 줄 알았던 생소한 환경에 도착해보니 이미 나에 대한 평판이 좋아서 사람들의 마음에 들기 위해 내가 특별히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것인 어떤 느낌인지를 경험하게 해준 사람이었다. 모든 사람이 나에 대해서 잘 알고 있고 내 마음에 들려고 애쓰는 것은 이제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일이었다. 대접받는 자리에 익숙하지 않았기에 그늘의 예상치 못한 대우에 나는 기운이 났다. 자유로워진 느낌이었다. 모든 근심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릴라가 하거나 하지 않을 일 때문에 걱정이 되지도 않았다. 

 

📎 릴라는 내 가치를 모른다. 하지만 아르만도나 나디아나 니노는 다르다. 이들이야말로 내 친구들이다.

 

📎 릴라에게만 의존해서 보지 못한 것이 너무 많았다. 릴라의 박수는 얼마나 경박스러웠던가. 미켈레나 스테파노나 피렌체에서 온 친척의 저속한 농담과 별다를 바가 없었다. 

 

📎 그동안 릴라에게 일어난 일을 되짚어보는 일은 이렇게 쉽지 않다. 릴라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면 컨베이어벨트의 속도가 갑자기 느려지거나 빨라진다. 급커브를 돌기도 하고 경로에서 벗어나기도 한다. 그러면 여행 가방이 떨어지고 가방이 열려 안에 든 것들이 여기저기 흩어지게 되는 것이다. 흐트러진 물건이 내 짐과도 섞여버려서 결국에는 릴라의 물건을 주워 담기 위해서 막힘없이 술술 써내려갔던 내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 지금까지 너무 요약해서 썼던 이야기를 다시 풀어써야 했다. 

 

📎 불현듯 '거의'라는 단어가 마음에 와 닿았다. 내가 해낸 건가. 거의 그렇다. 나폴리에 있는 고향 동네에서 이제는 완전히 벗어난 건가. 거의 그렇다. 나는 교육 수준이 높은 환경에서 자라난 아이들과 친구가 되었는가. 거의 그렇다. 갈리아니 선생님이나 그녀의 아들보다 더 수준 높은 아이들과 친구가 되었는가. 거의 그렇다. 시험에 시험을 거치면서 권위 있는 교수님들에게 인정받는 학생이 되었는가. 거의 그렇다. '거의'라는 단어 뒤에 실상이 숨겨져 있는 것 같았다. 

 

4. 읽고 나서

나폴리 4부작의 두번째 책, 『새로운 이름의 이야기』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엘레나와 릴라의 관계가 점차 복잡해지면서도 끊을 수 없는 강한 연결고리를 유지한다는 부분이다. 엘레나는 릴라로부터 독립하려 하지만, 그녀의 존재와 영향력에서 끝내 벗어나지 못한다. 어쩌면 평생을 그 영향 아래에서 살아가는 듯 하다.

 

릴라는 결혼을 통해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지만, 여전히 내면의 혼란과 불행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반면, 엘레나는 학문적 성취를 통해 자아를 찾아가려 한다. 릴라는 고향에 머물며 그곳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실현하려 애쓰지만, 엘레나는 그곳을 떠나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려 한다. 엘레나가 고향을 떠나 공부를 계속하려는 결정도, 자신의 꿈과 야망 때문이 아니라, 릴라에 대한 열등감과 경쟁심리에서 비롯된 것임을 깨달았을 때는 조금 씁쓸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엘레나를 응원하게 만드는 점이 이 소설의 묘미라고 생각한다. 릴라 역시 엘레나가 자신에게서 모든 이유와 동기를 찾고 있음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녀도 나름의 방식으로 엘레나를 응원하고 있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릴라는 원래부터 색감이 뛰어나고 선을 그리는 데 소질이 있었다. 하지만 우리가 함께 작업을 한 그때만큼은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었다”라는 구절은, 릴라의 특별한 재능을 엘레나가 인정하면서도, 그 재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을 목격하며 엘레나가 느끼는 복잡한 감정을 잘 드러낸다. 릴라의 성취는 엘레나에게 늘 불안과 질투를 일으키지만, 동시에 동경과 존경의 감정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이들의 관계를 들여다보면 마음 한켠이 아프기도 하고, 또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책을 읽으며 느낀 점은, 두 주인공이 각기 다른 길을 걷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서로에게 깊은 영향을 주고받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끊임없이 서로를 비교하고 경쟁하면서도, 끝내 서로의 존재를 부정할 수 없다. 이런 복잡하지만 매우 현실적인 관계 묘사는, 독자로 하여금 엘레나와 릴라 모두에게 감정적으로 깊이 이입하게 만든다. 『새로운 이름의 이야기』는 한 개인의 성장과 자아 발견을 넘어, 인간 관계의 복잡함과 그 안에서 일어나는 감정의 소용돌이를 예리하고 투명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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