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소개
향가 〈찬기파랑가〉와 SF를 접목한 소설 《기파》로 “압축적이고, 개성적이며, 독보적인 소설”이라 평가받으며 제3회 한국과학문학상 장편 대상을 수상했던 박해울 작가가 4년여 만에 첫 소설집 《요람 행성》으로 돌아왔다. ‘오염된 지구를 버리고 떠난 사람들과 오래된 지구를 찾아온 낯선 존재들의 이야기’라고 축약할 수 있는 아홉 편의 소설 뒤엔 소설의 비하인드 스토리에 해당하는 작가의 짧은 코멘트가 부록으로 실려 있다.
사회복지사로 일하며 SF 소설가의 꿈을 키웠던 작가는 데뷔작으로부터 이번 첫 소설집을 묶어내는 데까지 생각보다 긴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정교하게 다듬은 문장들과 ‘환경’과 ‘종교’ 그리고 ‘현실’을 바라보는 진솔하면서도 따듯한 작가의 시선과 그 시선에서 나아가는 인물들을 통해 이번 소설집이 얼마나 단단하게 꾸려졌는지 여실히 느껴진다. _ 출판사 책 소개 중
박해울의 소설에는 빛나는 일상 감각이 있다.
각자의 자리에서 묵묵히 맡은 일을 해나갈 따름인 이들이 있다.
이 보편의 삶에 서늘한 균열이 파고들 때,
우리는 이것이 영웅들이 아니라 바로 나와
내 이웃의 세계에 틈입한 균열에 대한 이야기임을 깨닫는다.
그러나 이야기가 강렬한 힘을 얻는 것은 다음 순간이다.
박해울의 인물들은 담담할지언정 결코 외면하지 않는다.
그 균열에 대한 집요한 직면이 이 소설들에 흩어지지 않는 빛을 더한다.
그렇게 《요람 행성》은 무덤덤하지만 또 아름답게, 평범한 이의 존엄한 선택을 그려낸다
_ 김초엽 작가 추천사
2. 목차
- 요람 행성 | 부록
- 당신의 운명은 당신이 지금까지 해온 것에 달려 있다 | 부록
- 세계의 끝 | 부록
- 안개 숲 순례자 | 부록
- 바 칼레이도스코프 | 부록
- 수호성인의 몰락 | 부록
- 철의 종족 | 부록
- 토르말린 클럽 | 부록
- 지구의 날 | 부록
- 작가의 말
3. 인상 깊은 구절 & 읽고 나서
✍🏻 요람 행성
📎 이 글을 읽는 사람이 있을까. 내가 어떻게 됐는지 궁금해하는 사람이 있을까. 여기까지 와서 데이터를 뒤져 이 글을 읽을 사람은 없으리라. 나는 희망을 걸지 않는다. 그럼에도 기록한다. 이것이 내가 여기 있었다는 처음이자 마지막 기록이 될 것이므로.
📎 그들은 장례를 치러주기 위하여 매립지까지 왔다. 그들이 모인 광경이 엄숙했다느니, 그들이 어떤 표정을 짓고 무슨 의식을 치렀느니 하는 이야기는 덧붙이고 싶지 않다. 나는 그때 그들의 표정을 전혀 읽을 수 없었다. 그들은 모여서 울부짖었을 뿐이다. 그것이 애도의 의미인지, 아니면 다른 무언가인지 알 수는 없었다. 그들의 언어를 해석할 수 없었다.
📎 그들에게 나는 철저한 이방인일 따름이었으므로. 내 귀에는 그 울음이 슬프게 들렸지만, 나는 아직도 그 울음의 의미를 모른다. 숲에서 분명하게 안 사실은, 그들에게도 그들만의 생이 있었다는 것이다.
📎 내 죽음은 아무도 모르리라. 내가 이곳에 살았던 것을 아무도 모르는 것처럼. 그러니까, 나와 상관없이 이 세계는 돌아간다.
📎 그때, 수현은 똑똑히 들었다. 저 멀리서 들려오는 울음과 둥둥 울리는 북소리를. 그는 중얼거렸다. “어떻게 헛된 일을 했다고 말할 수 있겠어요?”
💡 ’나‘의 세계를 위해 다른 이의 세계를 파괴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잃은 없다.
✍🏻 당신의 운명은 당신이 지금까지 해온 것에 달려 있다
📎 나는 속으로 이 열차에 할머니가 타고 있을 거라고 끝없이 되뇌며 객실들을 둘러보기로 했다. 할머니가 이곳에 있다면, 어디에 있을지 상상했다. 할머니는 의욕 있게 사람들과 토론을 나눌 만한 성격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죽음이 두려워서 울고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그저 자신의 자리에서 창밖을 바라보고 있을 것 같았다.
💡누구나 궁금해마지 않는 사후 세계, 그리고 또 그 이후에 대해. 인간이라는 존재의 본질은 변하지 않으니까. 그런데 이런식으로 선별 되어 또 한번의 생을 살게 된 사람들의 세계는 .. 좀 다를까?
✍🏻 세계의 끝
📎 잔을 입에서 떼자 마천루의 포효가 들렸다. 균열이 가고 깨진 곳에 바람이 지나가며 나는 소리였다. 우리가 맹세를 실현할 수 있을지 이곳에서 영원히 기억하고 있겠다는 증인의 엄숙한 선언처럼 들렸다.
📎 나는 사람이 죽기 직전에 두뇌 데이터를 스캔하면, 망자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추모원의 가상현실 시스템에 접속하여 망자와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시절에 살고 있었다.
📎 네가 나에게 미래를 보고 싶다고 말했잖아.
📎 별안간 머리에 잔뜩 몰린 피가 흩어지는 기분이 든다. 한쪽 눈을 떠보았다. 한순간에 내 몸의 방향이 완전히 달라진 것 같았다. 세계가 뒤집히고, 중력이 완전히 다른 곳에서 느껴진다.
📎 너희 둘 다 틀렸어. 하눅은 내가 방학이나 즐기고 있으라고 날 여기 넣은 게 아니야. 난 여태까지 지금을 기다린 거라고. 나는 나야, 내가 갈 곳은 내가 정해. 나는 행복해. 불행하지 않아.”
📎 하눅은 이곳에 없다. 하지만 그의 뜻을 기억하고, 나를 깨운 존재가 있었다. 나는 생각했다. 진짜 하눅이라면 아마 이자와 똑같이 했을 거라고.
💡 세 친구의 각기 다른 선택이 만들어 낸 하나의 이야기.
✍🏻 안개 숲 순례자
📎 그러나 이전과 다르게 무언가 발견할 수도 있지 않을까. 이 생각에 미치자 노이는 99개의 숲에서 허탕을 쳤음에도 희망을 놓지 않고 있는 자신에게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 사람의 욕망으로 만들어낸 신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걸까.
✍🏻 바 칼레이도스코프
📎 최선의 인생은 누가 정하지? 젠장, 이게 최선의 인생이라고? 나는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리도록 가만히 섰다.
💡 내가 했던 모든 것보다 더 나은 선택이 있을 수 있다는 걸 깨닫는 순간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내가 가진 것을 진정으로 깨달을 때, 비로소 위로를 받는다.
✍🏻 수호성인의 몰락
📎 나는 그런 소문이 떠도는 것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나에게는 해야 할 일이 있었다.
📎 사제들은 당시 상황을 자신들 마음대로 재구성했다. 감히 신성한 공간에 틈이 있다고 사실대로 말할 수는 없었으리라. 하지만 짐승이 틈을 찢었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었는데, 그렇게 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일까. 어쩌면 그들이 재구성하려는 이야기에 토마가 악마로 설정되는 편이 용이해서였을까.
📎 틈학은 그들의 의도에 맞게 기입되었다. 나는 더 이상 틈학을 믿을 수 없었다. 틈학은 학문이 아니라 로아나교를 존속시키기 위한 장치였을 뿐이다. 그리고 나 또한 탑을 쌓는 벽돌 중 하나에 지나지 않았다.
💡 소설집에서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이 작품은 다른 세계와 연결되는 '틈'을 이 세계에서 어떻게 인식하는지를 통해 그 '틈'을 만들고 없애는 인간의 욕심과 욕망이 어디까지 미칠 수 있는지를 생각해볼 수 있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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