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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처럼 사소한 것들(Small Things Like These) - 클레어 키건 | 시 같은 문장들 | 짧은 소설책 추천 | 부커상 최종 후보작

by lofromis 2024. 9.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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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아름답고 명료하며 실리적인 소설

- 부커상 심사위원회 -

 

 

 

클레어 키건의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아일랜드의 한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한 소설로, 간결한 문체와 깊은 감정이 녹아 있는 이야기다.

전 세계 독자들의 사랑과 언론의 호평을 받으며 베스트셀러에 오른 이 책은, 자신이 속한 사회 공동체의 은밀한 공모를 발견하고 자칫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는 선택 앞에서 고뇌하는 한 남자의 내면을 그린 작품이다.  - 출판사 책 소개

 

2. 작가 소개

클레어 키건은 아일랜드 출신 작가로, 짧지만 강렬한 작품들로 평단의 찬사를 받았다. 키건은 자국 아일랜드를 비롯한 유럽에서 이미 거장의 반열에 오른 작가였으나, 다른 대륙으로까지는 그 명성이 채 전해지지 않았었다. 그러나 이처럼 사소한 것이 출간되며 미국을 비롯한 세계 독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기 시작했다.

 

키건은 간결한 문체로 인간의 내면과 복잡한 감정들을 섬세하게 그려내는 작가로 평가받는다. 그녀는 자신의 직업을 '덜어내는 작업'이라고 일컬으며 무엇보다 간결함으로부터 기쁨을 느낀다고 말한다. 

이 짧은 소설은 차라리 시였고,
언어의 구조는 눈 결정처럼 섬세했다. 
잘못 건드리면 무너지고 녹아내릴 것 같았다.

_홍한별 번역가('옮긴이의 글' 중에서)

3. 줄거리

이 소설의 배경은 1985년,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의 아일랜드이다. 주인공 빌 펄롱은 석탄 배달부로, 작은 마을에서 아내와 딸을 돌보며 소박한 삶을 살아간다. 국가적 경제 불황의 여파는 마을 곳곳에서 느껴지지만, 펄롱은 묵묵히 일하며 가정을 지킨다. 그는 가난한 미혼모에게서 태어나 일찍이 고아가 되었지만, 친절한 어른의 도움으로 성장했다. 현재 직업을 갖고 딸들을 좋은 학교에 보낼 수 있다는 사실이 그에게는 큰 특권으로 여겨진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어느 날, 펄롱은 수녀원으로 석탄을 배달하러 갔다가 한 어린 소녀를 만나게 되고, 그곳에서 벌어지는 불법적인 일을 알게 된다. 수녀원은 마을에서 절대적인 권력을 가진 기관이었고, 마을 사람들은 그곳의 비밀을 알고 있었지만, 자신들의 평온한 삶을 위해 눈을 감았다. 펄롱의 아내마저도 그에게 '세상에는 무시해야 할 일이 있다'며 가정을 지키기 위해 침묵을 조언한다.

 

하지만 펄롱은 이 과정에서 자신의 과거와 마주하게 되고, 아내와의 관계, 딸들의 미래까지 돌아보게 된다. 그는 수녀원에 있는 소녀들의 고통이 '사소한 것들'이 아니며, 자신의 삶과도 무관하지 않음을 깨닫는다. 결국 펄롱은 이 상황에 대해 침묵하지 않기로 결심하고, 작은 행동이지만 중요한 결정을 내리게 된다. 이 결정은 그의 삶을 바꿀뿐더러, 그가 속한 공동체와 사회에 대한 깊은 성찰을 불러일으킨다.

 

이 소설은 빌이 선택한 길이 과연 옳은 것이었는지, 그가 직면한 도덕적 질문에 대한 답이 무엇인지는 독자가 생각해볼 문제로 남기며, 인간성의 본질과 우리가 흔히 지나치는 ‘사소한 것들’에 대해 묵직한 여운을 남긴다.

 

✔️ '막달레나 세탁소' 사건과의 유사성

막달레나 세탁소 사건은 18세기부터 1996년까지 아일랜드 가톨릭 교회가 운영한 세탁소에서 발생한 여성 인권 침해 사건이다. 이곳은 주로 미혼모, 성폭력 피해자, 사회적으로 부적합하다고 여겨진 여성들이 수용되었으며, 강제 노동과 가혹한 처우를 받았다. 세탁소에 수용된 여성들은 종종 가족이나 사회에서 버림받은 이들이었고, 교회의 통제 속에 자유를 박탈당한 채 장시간 노동에 시달렸다. 무려 70여 년간 자행되어온 인권 유린에 대해 아일랜드 정부는 아무런 사죄의 뜻도 표명하지 않고 수십 년간 은폐하였으나, 2013년이 되어서야 뒤늦게 사과문을 발표했다. 

 

이런 배경을 두고 이 책은 종종 역사소설로 비치곤 했지만 작가는 이 소설이 막달레나 세탁소 사건을 주제로 한 작품이라는 점에는 완벽히 동의하지 않는다고 한다. 

 

  • 미혼모와 여성의 억압
    이처럼 사소한 것들에서 수녀원이 운영하는 미혼모 보호시설은 실제로 아일랜드에서 운영되던 막달레나 세탁소와 매우 유사하다. 소설 속 수녀원은 미혼모들과 그들의 아이들이 겪는 고통과 부당함을 보여준다.
  • 공동체의 침묵과 외면
    ⌜이처럼 사소한 것들⌟에서 마을 사람들은 수녀원의 비밀을 알지만, 그들의 평온한 삶을 유지하기 위해 외면한다. 빌 펄롱조차도 처음에는 고민하지만, 결국 도덕적 선택을 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인다. 마찬가지로, 막달레나 세탁소의 존재는 많은 아일랜드인들에게 알려져 있었으나, 교회와 국가가 가진 권력으로 인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침묵했다. 이처럼 여성들이 겪는 고통과 착취에 대한 사회적 외면이 두 이야기의 중심에 놓여 있다.
  • 도덕적 선택과 개인의 역할
    빌 펄롱이 수녀원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 알게 된 후 자신의 도덕적 갈등을 겪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행동을 선택하는 과정은 중요한 줄거리이다. 이는 막달레나 세탁소와 같은 부조리한 시스템에 대해 개인이 어떤 책임을 느끼고 행동할 수 있는지를 묻는 질문이기도 하다. 실제 역사에서 막달레나 세탁소 사건은 오랜 기간 동안 묵인되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진실이 밝혀졌고 이에 대해 많은 비판과 성찰이 이어졌다.
  • 종교 기관의 역할
    막달레나 세탁소는 가톨릭 교회의 수녀원에서 운영되었으며, 교회는 당시 사회에서 강력한 권위를 지니고 있었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에서도 수녀원이 지역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권위 있는 기관으로 그려진다. 종교 기관은 사람들을 보호하기보다는 억압하고 착취하는 권력의 상징으로 나타나며, 이러한 종교적 권위에 맞서는 개인의 도덕적 선택이 중요한 테마가 된다.

 

 

4. 인상 깊은 구절

📎 불운의 출입구를 지나본 이는 안다. 안락과 몰락을 가르는 것은 더없이 연약한 경계임을.

 

📎 모든 걸 다 잃는 일이 너무나 쉽게 일어난다는 걸 펄롱은 알았다.

 

📎 곧 펄롱은 정신을 다잡고는 한번 지나간 것은 돌아오지 않는다고 생각을 정리했다. 각자에게 나날과 기회가 주어지고 지나가면 돌이킬 수가 없는 거라고. 게다가 여기에서 이렇게 지나간 날들을 떠올릴 수 있다는 게, 비록 기분이 심란해지기는 해도 다행이 아닌가 싶었다. 날마다 되풀이 되는 일과를 머릿속으로 돌려 보고 실제로 닥칠지 않을지 모르는 문제를 고민하느니보다는.

 

📎 ”아무것도 아냐. 그냥 당신이 모르는 거 같아서. 당신은 딱히 어려움을 모르고 컸잖아.”

“무슨 어려움 말야?”

“그게, 세상에는 사고를 치는 여자들이 있어. 당신도 그건 잘 알겠지.”

강한 타격은 아니었으나, 그때까지 아일린과 같이 살면서 그런 말을 들어보기는 처음이었다. 뭔가 작지만 단단한 것이 목구멍에 맺혔고 애를 써보았지만 그걸 말로 꺼낼 수도 삼킬 수도 없었다. 끝내 펄롱은 두 사람 사이에 생긴 것을 그냥 넘기지도 말로 풀어내지도 못했다.

(…)

“그렇지만 우리가 가진 것 잘 지키고 사람들하고 척지지 않고 부지런히 살면 우리 딸들이 그 애들이 겪는 일들을 겪을 일은 없어. 거기 있는 애들은 세상에 돌봐줄 사람이 한 명도 없어서 그런 거야. 그 애들 부모는 애들을 멋대로 풀어놨다가, 문제가 생기니까 모른 척 등을 돌려버렸겠지. 자식이 있는 사람이 그렇게 무심해서는 안 되는 건데.”

“하지만 만약 우리 애가 그중 하나라면?” 펄롱이 말했다.

“내 말이 바로 그거야.” 아일린이 다시 일어나 앉으며 말했다. “걔들은 우리 애들이 아니라고.”

 

📎 시내 중심 크리스마스 전등이 켜진 곳이 가까워지자, 먼길로 돌아가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펄롱은 용기를 내어 평소에 다니던 길로 계속 갔다. 그때 아이가 뭔가 달라지는 것 같더니, 곧 걸음을 멈추고 길에 토하기 시작했다.

 

📎 두 사람은 계속 걸었고 펄롱이 알거나 모르는 사람들을 더 마주쳤다. 문득 서로 돕지 않는다면 삶에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나날을, 수십 년을, 평생을 단 한번도 세상에 맞설 용기를 내보지 않고도 스스로 기독교인이라고 부르고 거울 앞에서 자기 모습을 마주할 수 있나?

아이를 데리고 걸으면서 펄롱은 얼마나 몸이 가볍고 당당한 느낌이던지. 가슴속에 새롭고 새삼스럽고 뭔지 모를 기쁨이 솟았다. 펄롱의 가장 좋은 부분이 빛을 내며 밖으로 나오고 있는 것일 수도 있을까? 펄롱은 자신의 어떤 부분이, 그걸 뭐라고 부르든 - 거기 무슨 이름이 있나? - 밖으로 마구 나오고 있다는 걸 알았다. 대가를 치르게 될 테지만, 그래도 변변찮은 삶에서 펄롱은 지금까지 단 한번도 이와 견줄 만한 행복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갓난 딸들을 처음 품에 안고 우렁차고 고집스러운 울음을 들었을 때조차도.

 

📎 펄롱은 미시즈 윌슨을, 그분이 날마다 보여준 친절을, 어떻게 펄롱을 가르치고 격려했는지를, 말이나 행동으로 하거나 하지 않은 사소한 것들을, 무얼 알았을지를 생각했다. 그것들이 한데 합해져서 하나의 삶을 이루었다.

 

📎 최악의 상황은 이제 시작이라는 걸 펄롱은 알았다. 저 문 너머에서 기다리고 있는 고생길이 느껴졌다. 하지만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일은 이미 지나갔다. 하지 않은 일, 할 수 있었는데 하지 않은 일 - 평생 지고 살아야 했을 일은 지나갔다. 지금부터 마주하게 될 고통은 어떤 것이든 지금 옆에 있는 이 아기가 이미 겪은 것, 어쩌면 앞으로도 겪어야 할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5. 읽고 나서

이 책은 주인공 빌 펄롱의 용기 있는 선택이 무엇보다 인상 깊게 다가오는 작품이다. 펄롱은 자신이 자라온 환경과 어머니의 힘겨운 삶을 통해 고난을 체험한 사람이다. 그래서 타인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고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인물로 그려진다. 그의 선택은 단순히 정의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그는 수녀원에서 학대받는 소녀를 보며 자신과 어머니의 과거를 떠올리고,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일처럼 여기게 된다. 그가 느낀 공감과 연민은 그가 넘지 말아야 할 경계, 즉 마을과 가족의 안락함을 지키기 위한 침묵을 깨는 계기가 된다.

 

펄롱의 용기는 마을 사람들이 모두 알고도 외면했던 진실을 직면하는 데서 비롯된다. 경제적 안정과 가족의 평화를 위해 그 비밀을 묵인할 수 있었음에도, 그는 그저 수동적인 방관자가 아닌,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행동한다. 특히 그의 결정은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과거와 연결 짓고, 고통을 이해하는 데서 나온다는 점에서 더 깊은 울림을 준다. 이는 그저 한 남자의 용기를 넘어, 우리가 어떤 상황에서 침묵을 선택할 때, 그로 인해 희생될 이들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아야 한다는 메시지로 확장된다.

 

펄롱이 가진 인간적인 깊이는, 결국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문제로 느낄 수 있는 능력에서 비롯된 것이며, 그가 보여준 선택은 세상을 바꾸는 큰 일보다도 사소하지만 중요한, 인간적인 결단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맨 처음 소설 도입부를 읽을때는 이해하기가 다소 어려웠지만, 끝까지 읽고 나서 옮긴이의 말을 읽었을 때 그 의미가 명확해졌다.

"저는 좋은 이야기의 기준 가운데 하나는 독자가 이야기를 다 읽고 첫 장으로 돌아왔을 때, 도입 부분이 전체 서사의 일부로 느껴지며 감정이 이어질 내용의 특징을 잘 드러낸다고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이 이야기도 그렇기를 바랍니다. 처음에는 뚜렷이 보이지 않더라도, 도입 부분에서 어떤 감정을 느끼길 바랍니다. 전체 이야기를 알고 나면 첫 문단이 적절하게 느껴지고 이어질 이야기를 암시한다고 생각될 것입니다. 저는 두 번 읽어서 결말 부분이 앞으로 밀려와 다시 서사가 한 바퀴 돌아가기 전에는 이야기를 다 읽었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클레어 키건이 이야기한 ‘좋은 글’의 기준이 매우 인상적이었고, 그녀가 스스로 그 기준에 부합하는 훌륭한 글을 썼다는 점이 놀라웠다. 옮긴이의 말에서 "이 짧은 소설은 차라리 시였고, 언어의 구조는 눈 결정처럼 섬세했다."라고 평한 말이 이 책을 더욱 아름답게 느껴지게 했다. 여운이 깊이 남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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